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 승리에 대한 단상, 그리고 사색

2008. 8. 22. 20:21etc.

[2008/8/22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일본에게 승리한 한국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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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서는 쿠바전에서 전력을 아껴 오히려 패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준결승에서 어느 나라를 상대하게 되느냐를 염두에 둔 의견이었다.

나 역시 쿠바전에서 져 예선 2위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일본 모두 객관적 전력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쿠바보다는 대한민국과 준결승을 치루는 것이 수월하다고 판단, 3위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그 만큼의 피로를 안고 준결승에서 맞붙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나의 이러한 부끄러운 바램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공식대회에서 처음으로 쿠바를 꺾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진운을 바라는 꼼수보다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당당함과 숭고함을 느꼈다.

한편 미국과의 일전에서 석연치 않은 패배를 당한 일본은 직접적인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내심 대한민국과 준결승을 치루는 것을 반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대한민국은 WBC에서 앞선 두 경기를 이기고도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 경험이 있었고 일본은 그 반대의 경험이 있었기에 마치 WBC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초반 고영민의 실책, 김광현의 와일드 피치로 2점을 리드당하고 무사 1, 3루의 찬스에서 1점밖에 만회하지 못했을 때의 그 안타까움이란. 매회 이어지는 줄타기와 같은 긴장감 속에서도 김광현은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자신감으로 멋진 피칭을 이어나갔고 8회말 극적인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작두를 타는 무당을 보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8회말 이승엽의 홈런과 이어진 후속안타는 한국 국민 모두의 마음 깊은 곳 응어리를 녹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특히 준결승전을 의식해 미국에게 일부러 패배한 듯한 일본을 상대로 한 승리였기에 그 기쁨은 더했다.

잠시나마 나 역시 대진운을 바라고 쿠바전에서 패배를 했으면 했던것에 대해 부끄러운 후회가 밀려왔다. 단지 야구에서만이 아닌 나 스스로 어려운 일에 당면했을 때 쉬운길로 돌아가려고 했던 내 모습들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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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승리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해도 역시 이승엽일 것이다.
2할을 넘지 못하는 기록과 어이없는 스윙은 내 맘속에 대타를 부르짖게 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줌으로써 '믿음'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독도를 넘겨 대마도까지 갔다는 말로 얼마나 이승엽의 홈런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해학적으로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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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대표팀은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기록하고도 2점을 더 보탬으로써 일본의 추격의지를 상실시켰다. 볼 카운트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가 아닌 8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듯한 드라마를 쓸 수 있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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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오늘의 최고의 수훈갑은 김광현이다.
비록 초반 2점을 내주었으나 흔들리지 않고 8회까지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경기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를 생각하면 김광현은 자신과의 가장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최고의 선수이다. 후반 매회 하나 정도의 안타를 허용하고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김광현에게 정말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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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외에도 전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특히 선두타자 출루로 득점의 물꼬를 튼 이용규 선수, 동점타로 의지를 불어넣어 준 이진영 선수, 앞선 경기에서 홈런을 맞고도 후속 타자들을 차례로 돌려세우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오늘 경기에서도 9회를 깔끔하게 틀어막은 윤석민, 이 밖에도 강민호, 고영민, 권혁, 김동주, 김민재, 김현수, 류현진, 박진만, 봉중근, 송승준, 오승환, 이대호, 이종욱, 이택근, 장원삼, 정근우, 정대현, 진갑용, 한기주 모든 선수들에게 한국 야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일원으로써 감사와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나아가 병역면제의 혜택을 받는 선수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23일 결승전에서 또 하나의 드라마를 기대해본다.